Category : 2005년/2005년 12월
그 여자를 만난 건 육년 동안 사귄 여자가 떠나고서였다. 어디에서나 그 잘남이 돋보이던 떠난 여자는 내게 무척 몰두했다. 갓 병장이 된 어느 날 여자가 말했다. “당신의 삶의 방식을 존경해요. 하지만 내가 그렇게 사는 것은 사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삶의 방식과 사는 것... 이별보다 이별이 남긴 말이 나를 고통스럽게 했다. 나는 내가 여자와의 관계에서 모종의 선민의식을 가졌음을 발견했다. 이른바 민중과 역사를 고민한다던 내가 말이다. 욕지기가 났다. 나는 나를 조금 오염시키기로 했다.
“이상병, 나 한번 가야겠다.” “에이 김병장님 농담 마십쇼.” “농담 아니다.” “진짜 한 빠구리 하시려구요.” 네온사인 기사였다는 이상병은 색정광이었다. 그는 운천의 여성들 가운데 제 점검을 받지 않은 경우는 없다고 너스레를 떨곤 했다. 그러나 그는 휴가길이면 이미 남의 아내가 된 옛사랑의 집만 내내 배회하는 순정파였고 돌아와서는 금새라도 총으로 제 머리통을 날릴 것 같은 절망적인 얼굴로 며칠을 돌아다녔다. 그럴 때면 나는 소주와 라면을 구해 그의 눈물 바람을 밤새 들어주곤 했다.
그 일요일 교회에 가는 사병들(기독교 환자라 불리던 답답한 녀석들)에 끼어 부대를 나갔다. 나는 이상병이 말한 ‘고흥여인숙의 윤양’을 찾았다. 여자를 보는 순간 나는 안도했다. 여자는 종일 방안에서 남자나 상대하는 사람이라고 믿기 힘든, 이상스레 맑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는 여자를 좋아하게 되었다. 밤에 보초를 서면 말간 달 속에 여자의 얼굴이 나타났고 밥을 먹을 때면 식판 국물 속에 그 달이 떴다. 떠난 여자가 남긴 번민을 씻어내려는 욕구가 섞였겠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나는 여자를 좋아하게 되었다.
여성지와 시시한 수필집 따위로 채워진 작은 서점에서 나는 간신히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를 찾았다. 여자가 사는 곳에 갔지만 들어서진 않았다. 나는 여자를 사러 온 게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여자에게 선물을 전해주러 왔다. 난 이 고단할 연애를 그렇게라도 소유하고 싶었다.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군복이 하얗게 변하고 모자챙 끝으로 물방울이 떨어질 무렵 내 시야의 오른편에 여자가 들어섰다. 여자는 집게에 연탄재를 들고 나오다 나를 발견했다. “이거...” 말이 나오지 않아 나는 선물만 들어 보였다. 천천히, 연탄재가 떨어져 박살이 났다.
난 여자를 몇 번 더 만났다. 늘 쫓기는 시간 속에 난 여자를 알아갔다. 나보다 두 살 아래라는 것, 카톨릭 신자라는 것, 열아홉살 때 누군가에게 큰 상처를 입었고, 그러저러 이 길로 들어섰다는 것, 엄마에겐 작은 임대아파트를 언니에겐 속셈학원을 차려주었다는 것, 곧 떠날 생각이라것... “잘 생겼지요.” 여자의 보물은 초등학교 오학년 짜리 남동생 사진을 넣은 작은 액자였다. 여자도 내 얘기를 듣고 싶어했다. 어설픈 운동권이었다는 것, 보안대의 압력으로 부대를 세 번 옮겨다녔다는 것, 한 여자를 떠나보낸 일로 여자를 찾게 되었다는 것... 내 자못 심각했던 얘기들은 여자의 삶 앞에서 호사스런 장난이었다. 대신 나는 어릴 적 얘기를 했다. 어머니가 오랫동안 많이 아팠다는 것, 그래서 밖에 나가 놀아본 기억이 거의 없다는 것, 초등학교 사학년 때 첫사랑과 헤어져 스무살이 되도록 힘들었다는 것...
여자와 나는 한번이라도 길고 편안한 시간을 갖길 바랬다. 올림픽이 다가오자 외출외박은 일없이 미루어지곤 했다. 간신히 외박 허가를 받은 날 나는 전령 편에 여자에게 메모를 전했다. “모레 나갑니다. 몇시에 가는 게 좋을지 알려주세요.” 어쨌거나 그 일은 여자의 직업이었고 여자를 곤란하게 만들고 싶진 않았다. 함께 나간 패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나만 남았다. 일없이 배회하는 나를 순찰 나온 헌병들이 집적거렸고 나는 골목 안 만화가게에 들어갔다. 허영만, 아니 이현세였던가. 스무권은 넘게 만화를 쌓아놓고 앉았지만 한 쪽도 넘기지 못했다. 약속한 일곱시를 오분 남기자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여자의 방 앞에 군화가 놓여 있었다.
주춤하는 나에게 누군가 다가와 손을 끌었다. “언니가 잠깐만 저쪽 방에서 기다리시라고 했거든요.” 반시간 쯤 후 온기 없는 빈방에 여자가 들어왔다. 여자는 무슨 큰 죄라도 지은 얼굴로 단골인데 자고 가겠다고 한다고 말했다. “좀더 말해 볼테니 기다리세요.” 한시간 쯤 지나 여자가 돌아온 여자는 내 앞에 무릅을 꿇고 앉아 흐느끼기 시작했다. “난 괜찮아요. 다시 오면 되는걸.” 나는 흔들리는 여자의 어깨를 안아주고 준비한 돈을 쥐어주었다.
“윤양, 떠났다는데요.” 여자의 안부를 부탁했던 전령이 말했다. 잘 된 일이라 생각했지만 쉽진 않았다. 다시는 만날 수 없겠구나. 여자는 이곳에서의 기억을 잊는 게 좋을 것이다. 나를 포함한 이곳에서의 모든 기억을. 종일 부대 뒤 개울가에 앉아 있다가 해가 지면 취사반 골방에 틀어박혀 밤새 소주를 먹었다. 부대를 돌아보던 인사계와 마주치자 나는 어쩔 테냐 하는 얼굴로 그를 노려보았다. 3년 동안 하이에나처럼 나를 괴롭히던 그도 내 눈길을 피했다.
이상병이 좋아 죽겠다는 얼굴로 편지 한 통을 내 손에 쥐어주었다. “생각보다 빨리 떠나는 바람에 연락 못 드렸어요. 저는 집에서 쉬고 있어요. 많이 보고 싶습니다...”
대대 서무계는 학생운동을 하다 강제징집된 사람이었고 내게 호의적이었다. 그가 만들어준 가짜 휴가증으로 세 개의 검문소를 통과한 나는 부평에 도착했다. 그러나 여자의 가족들 앞에 군복을 입고 나타날 순 없었다. “아저씨 우리 누나 찾아오셨어요?” 두시간 쯤 서성이고 있을 때 뒤에서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 이미 익숙한 얼굴이었다. 아이는 큰누나가 내려가 보라 했다 말했다. 늦은 시간 현관 앞을 서성이는 낯선 군인은 퍽 눈에 띄었을 것이다. “누나 집에 있니.” “누난 어제 취직해서 떠났거든요.”
말년 휴가에 청량리역 맘모스 다방에서 여자를 만났다. “제대 축하 드려요.” 꽃무늬 주름치마를 입은 여자는 마치 처음 만난 사람처럼 수줍어했다. 여자와 광릉수목원에 갔다. 처음 갖는 한가로운 시간이었다. 모든 안타까움과 낙심은 자취도 없는 듯 했다. 많이 웃고 많은 이야기를 했다. 코미디언들이 흉내내는 60년대 영화 속 술래잡기도 했던가. 여자는 양평 부근 다방에서 일한다고 했다. 티켓을 안 끊기로 해 벌이가 적긴 않지만 마음은 편하다고 했다.
그날 저녁 양평 가는 버스를 기다리다 내가 말했다. “당신과 결혼하고 싶어요.” 순간 여자의 얼굴에 웃음이 가셨다. 길게 한숨을 내 쉰 여자가 또박또박 이어 말했다. “충동적으로 말하는군요. 당신 가족들이나 주변사람들 생각은 해봤어요. 그 사람들 중에 나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는 걸 생각해 봤어요. 그런 걸 다 생각하고 하는 말인가요. 내가 우습게 보이나요.” 눈물 가득한 눈으로 여자가 쓰게 웃었다.
다음날 나는 여자를 찾았다. 여자는 나를 외면했다. 불편해진 나는 다방을 나와 담배를 꺼내 물었다. 자정 무렵 여자는 다방을 나와 주인여자의 자동차를 탔다. 다음날 다시 여자에게 갔다. 전날과 같았다. 그 다음날도 마찬가지였다. 나흘째 되는 날 여자가 나타났다. “버스정류장 앞 여관에서 기다리세요.” 새벽 두시가 넘어 여자가 들어왔다. 여자는 잔뜩 취해 있었다. “이봐요, 당신은 왜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는 거야.” 여자는 주저앉아 흐느끼기 시작했다. 무슨 말이든 하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다. 나는 여자의 머리를 안아주었다.
깜박 잠이 든 건가. 어스름한 방, 누운 내 옆에 여자가 서있었다. 여자가 속삭였다. “당신을 사랑해요. 하지만 난 자신이 없군요. 여자의 입술이 조심스레 내 입술에 닿았다. 여자가 방을 나갔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밖을 내다보았다. 물안개에 덮힌 강을 뒤로 한 채, 버스정류장에 여자가 섰다.
(다신 여자를 찾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음에도 나는 여자에게 한번 더 갔다. 자정 무렵 오토바이 한 대가 달려와 다방 앞에 섰다. 여자가 킬킬 웃으며 오토바이 뒤에 올랐다. 멀어지는 오토바이에서 여자가 나를 흘끔 돌아보았다. 여자의 행동을 이해하게 된 건 삼년 쯤 지나서다. 난 미숙한 인간이었다.)
“이상병, 나 한번 가야겠다.” “에이 김병장님 농담 마십쇼.” “농담 아니다.” “진짜 한 빠구리 하시려구요.” 네온사인 기사였다는 이상병은 색정광이었다. 그는 운천의 여성들 가운데 제 점검을 받지 않은 경우는 없다고 너스레를 떨곤 했다. 그러나 그는 휴가길이면 이미 남의 아내가 된 옛사랑의 집만 내내 배회하는 순정파였고 돌아와서는 금새라도 총으로 제 머리통을 날릴 것 같은 절망적인 얼굴로 며칠을 돌아다녔다. 그럴 때면 나는 소주와 라면을 구해 그의 눈물 바람을 밤새 들어주곤 했다.
그 일요일 교회에 가는 사병들(기독교 환자라 불리던 답답한 녀석들)에 끼어 부대를 나갔다. 나는 이상병이 말한 ‘고흥여인숙의 윤양’을 찾았다. 여자를 보는 순간 나는 안도했다. 여자는 종일 방안에서 남자나 상대하는 사람이라고 믿기 힘든, 이상스레 맑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는 여자를 좋아하게 되었다. 밤에 보초를 서면 말간 달 속에 여자의 얼굴이 나타났고 밥을 먹을 때면 식판 국물 속에 그 달이 떴다. 떠난 여자가 남긴 번민을 씻어내려는 욕구가 섞였겠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나는 여자를 좋아하게 되었다.
여성지와 시시한 수필집 따위로 채워진 작은 서점에서 나는 간신히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를 찾았다. 여자가 사는 곳에 갔지만 들어서진 않았다. 나는 여자를 사러 온 게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여자에게 선물을 전해주러 왔다. 난 이 고단할 연애를 그렇게라도 소유하고 싶었다.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군복이 하얗게 변하고 모자챙 끝으로 물방울이 떨어질 무렵 내 시야의 오른편에 여자가 들어섰다. 여자는 집게에 연탄재를 들고 나오다 나를 발견했다. “이거...” 말이 나오지 않아 나는 선물만 들어 보였다. 천천히, 연탄재가 떨어져 박살이 났다.
난 여자를 몇 번 더 만났다. 늘 쫓기는 시간 속에 난 여자를 알아갔다. 나보다 두 살 아래라는 것, 카톨릭 신자라는 것, 열아홉살 때 누군가에게 큰 상처를 입었고, 그러저러 이 길로 들어섰다는 것, 엄마에겐 작은 임대아파트를 언니에겐 속셈학원을 차려주었다는 것, 곧 떠날 생각이라것... “잘 생겼지요.” 여자의 보물은 초등학교 오학년 짜리 남동생 사진을 넣은 작은 액자였다. 여자도 내 얘기를 듣고 싶어했다. 어설픈 운동권이었다는 것, 보안대의 압력으로 부대를 세 번 옮겨다녔다는 것, 한 여자를 떠나보낸 일로 여자를 찾게 되었다는 것... 내 자못 심각했던 얘기들은 여자의 삶 앞에서 호사스런 장난이었다. 대신 나는 어릴 적 얘기를 했다. 어머니가 오랫동안 많이 아팠다는 것, 그래서 밖에 나가 놀아본 기억이 거의 없다는 것, 초등학교 사학년 때 첫사랑과 헤어져 스무살이 되도록 힘들었다는 것...
여자와 나는 한번이라도 길고 편안한 시간을 갖길 바랬다. 올림픽이 다가오자 외출외박은 일없이 미루어지곤 했다. 간신히 외박 허가를 받은 날 나는 전령 편에 여자에게 메모를 전했다. “모레 나갑니다. 몇시에 가는 게 좋을지 알려주세요.” 어쨌거나 그 일은 여자의 직업이었고 여자를 곤란하게 만들고 싶진 않았다. 함께 나간 패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나만 남았다. 일없이 배회하는 나를 순찰 나온 헌병들이 집적거렸고 나는 골목 안 만화가게에 들어갔다. 허영만, 아니 이현세였던가. 스무권은 넘게 만화를 쌓아놓고 앉았지만 한 쪽도 넘기지 못했다. 약속한 일곱시를 오분 남기자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여자의 방 앞에 군화가 놓여 있었다.
주춤하는 나에게 누군가 다가와 손을 끌었다. “언니가 잠깐만 저쪽 방에서 기다리시라고 했거든요.” 반시간 쯤 후 온기 없는 빈방에 여자가 들어왔다. 여자는 무슨 큰 죄라도 지은 얼굴로 단골인데 자고 가겠다고 한다고 말했다. “좀더 말해 볼테니 기다리세요.” 한시간 쯤 지나 여자가 돌아온 여자는 내 앞에 무릅을 꿇고 앉아 흐느끼기 시작했다. “난 괜찮아요. 다시 오면 되는걸.” 나는 흔들리는 여자의 어깨를 안아주고 준비한 돈을 쥐어주었다.
“윤양, 떠났다는데요.” 여자의 안부를 부탁했던 전령이 말했다. 잘 된 일이라 생각했지만 쉽진 않았다. 다시는 만날 수 없겠구나. 여자는 이곳에서의 기억을 잊는 게 좋을 것이다. 나를 포함한 이곳에서의 모든 기억을. 종일 부대 뒤 개울가에 앉아 있다가 해가 지면 취사반 골방에 틀어박혀 밤새 소주를 먹었다. 부대를 돌아보던 인사계와 마주치자 나는 어쩔 테냐 하는 얼굴로 그를 노려보았다. 3년 동안 하이에나처럼 나를 괴롭히던 그도 내 눈길을 피했다.
이상병이 좋아 죽겠다는 얼굴로 편지 한 통을 내 손에 쥐어주었다. “생각보다 빨리 떠나는 바람에 연락 못 드렸어요. 저는 집에서 쉬고 있어요. 많이 보고 싶습니다...”
대대 서무계는 학생운동을 하다 강제징집된 사람이었고 내게 호의적이었다. 그가 만들어준 가짜 휴가증으로 세 개의 검문소를 통과한 나는 부평에 도착했다. 그러나 여자의 가족들 앞에 군복을 입고 나타날 순 없었다. “아저씨 우리 누나 찾아오셨어요?” 두시간 쯤 서성이고 있을 때 뒤에서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 이미 익숙한 얼굴이었다. 아이는 큰누나가 내려가 보라 했다 말했다. 늦은 시간 현관 앞을 서성이는 낯선 군인은 퍽 눈에 띄었을 것이다. “누나 집에 있니.” “누난 어제 취직해서 떠났거든요.”
말년 휴가에 청량리역 맘모스 다방에서 여자를 만났다. “제대 축하 드려요.” 꽃무늬 주름치마를 입은 여자는 마치 처음 만난 사람처럼 수줍어했다. 여자와 광릉수목원에 갔다. 처음 갖는 한가로운 시간이었다. 모든 안타까움과 낙심은 자취도 없는 듯 했다. 많이 웃고 많은 이야기를 했다. 코미디언들이 흉내내는 60년대 영화 속 술래잡기도 했던가. 여자는 양평 부근 다방에서 일한다고 했다. 티켓을 안 끊기로 해 벌이가 적긴 않지만 마음은 편하다고 했다.
그날 저녁 양평 가는 버스를 기다리다 내가 말했다. “당신과 결혼하고 싶어요.” 순간 여자의 얼굴에 웃음이 가셨다. 길게 한숨을 내 쉰 여자가 또박또박 이어 말했다. “충동적으로 말하는군요. 당신 가족들이나 주변사람들 생각은 해봤어요. 그 사람들 중에 나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는 걸 생각해 봤어요. 그런 걸 다 생각하고 하는 말인가요. 내가 우습게 보이나요.” 눈물 가득한 눈으로 여자가 쓰게 웃었다.
다음날 나는 여자를 찾았다. 여자는 나를 외면했다. 불편해진 나는 다방을 나와 담배를 꺼내 물었다. 자정 무렵 여자는 다방을 나와 주인여자의 자동차를 탔다. 다음날 다시 여자에게 갔다. 전날과 같았다. 그 다음날도 마찬가지였다. 나흘째 되는 날 여자가 나타났다. “버스정류장 앞 여관에서 기다리세요.” 새벽 두시가 넘어 여자가 들어왔다. 여자는 잔뜩 취해 있었다. “이봐요, 당신은 왜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는 거야.” 여자는 주저앉아 흐느끼기 시작했다. 무슨 말이든 하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다. 나는 여자의 머리를 안아주었다.
깜박 잠이 든 건가. 어스름한 방, 누운 내 옆에 여자가 서있었다. 여자가 속삭였다. “당신을 사랑해요. 하지만 난 자신이 없군요. 여자의 입술이 조심스레 내 입술에 닿았다. 여자가 방을 나갔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밖을 내다보았다. 물안개에 덮힌 강을 뒤로 한 채, 버스정류장에 여자가 섰다.
(다신 여자를 찾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음에도 나는 여자에게 한번 더 갔다. 자정 무렵 오토바이 한 대가 달려와 다방 앞에 섰다. 여자가 킬킬 웃으며 오토바이 뒤에 올랐다. 멀어지는 오토바이에서 여자가 나를 흘끔 돌아보았다. 여자의 행동을 이해하게 된 건 삼년 쯤 지나서다. 난 미숙한 인간이었다.)